비가 내리는 날이면 원구의 마음은 무거워진다. 영문학과를 졸업한 친구 동욱과 그의 누이동생 동옥이 비에 젖은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원구는 거리에서 초라한 몰골의 동욱을 만난다. 동욱은 동옥이 그린 초상화를 미군에게 팔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동욱을 보며 원구는 연민을 느낀다.
원구는 폐가나 다름없는 동욱의 집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원구는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동옥을 처음 만난다. 동욱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에 원구는 동욱을 만나 집으로 되돌아간다. 동욱은 음식을 만들면서 동옥에게 마구 욕을 하고 원구는 빗물 들통이 쏟아질 때 동옥이 절름발이임을 알게 된다.
원구는 비가 와서 가판 가게를 열 수 없는 날에는 자주 동욱의 집을 찾았다. 동옥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져 미소를 짓기도 했다. 며칠 뒤 원구를 찾아간 동욱은 동옥이 초상화 그리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자신은 목사의 꿈을 접고 자원입대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옥과 결혼해 달라고 횡설수설한다.
동욱의 집에 잠시 들른 원구는 딱한 사정을 듣는다. 동옥이 번 돈을 집주인 노파에게 빌려줬는데, 노파가 집을 판 뒤 달아나 돈도 못 받고 새 주인에게 쫓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욱은 악에 받쳐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는 동생을 꾸짖는다.
비가 와서 장사를 못하게 된 원구는 동욱의 집을 방문하지만 새 주인은 두 사람이 모두 집을 나갔다고 말한다. 집을 나서는 원구에게 주인 사내는 동옥은 얼굴이 반반해 몸을 팔아도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원구는 주인이 동옥을 팔아먹었다고 격분하면서 허청거리며 밭둑길을 걸어간다.
평안남도 평양 출생의 작가다. 젊어서 만주와 일본 등지를 전전하다가 고학으로 일본 니혼대학교를 다니다 중퇴했다. 그 뒤 초등학교 교원, 잡지 편집자 등으로 일했다. 1952년 단편 ‘공휴일’과 ‘사연기’를 <문예>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55년 ‘혈서’로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59년 작가 자신의 반항적 기질을 담은 ‘잉여인간’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1961년 자전적 소설인 ‘신의 희작’을 발표한 이후 거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천성이 비사교적이고 외곬이어서 문단의 기인으로 알려져 있다. 1973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손창섭 소설의 주제는 왜곡된 인간상의 창조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대부분 비정상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장애자다. 이러한 인간의 불구성은 인간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전후의 참담한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손창섭은 이러한 기형적 인간형을 사실적인 필치로 그려 내 1950년대의 불안한 사회상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구 : 동욱 남매의 비참한 삶을 보고 애정을 베푸는 관찰자적 인물이다. 친구 동욱 남매를 연민하고 있지만 동옥과의 결혼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동욱 : 원구의 소학교에서 대학까지 동창생이다. 속으로는 동생에 대한 정이 있으나, 겉으로는 험하게 대하는 인물이다.
동옥 : 동욱의 누이동생으로 자신의 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을 경계하며 살아간다. 언젠가는 오빠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지녔다.
이 소설에서 비는 전후의 암울한 상황을 암시하는 요소다. 작가는 동욱 남매의 비정상적인 삶을 통해 전쟁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황폐화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비의 음산하고 우울한 이미지는 등장인물들의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삶과 연관되어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한다.
비 내리는 날은 원구가 과거를 회상하는 계기가 되고 동욱 남매의 비참한 삶을 상징한다. 또한 우울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원구의 죄의식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은 전쟁 체험의 상처와 충격을 불구적 인간형으로 보여 주고 있다. 동욱 남매는 신체적 · 정신적 불구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피해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허무와 절망의 자의식, 미래가 보이지 않는 무력감, 극도의 경제적 궁핍 등이 동욱 남매를 폐쇄적인 개인으로 내몰고 있다. 참담한 현실은 남매간의 애정도 파괴한다. 동욱이 동생을 사랑하면서도 저주하는 것은 삶을 부정할 때나 가능한 피폐한 정신 상태다. 동옥이 원구의 방문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일관하는 것도 지독한 가난과 신체적 불편으로 인해 내면세계에 틀어박힌 자아 때문이다. 결국 폐쇄적인 자아 때문에 동욱 남매는 생활의 터전에서 이탈된다. 동욱은 자원입대로 일상의 삶에서 멀어지고, 동옥도 인간적 삶이 허용되지 않는 곳으로 내몰린다. 이들의 고립은 시대적 상황과 사회의 병리 현상에 의해 유도된 것이다.
갈래 : 단편 소설, 전후 소설, 실존주의적 소설
성격 : 허무적, 실존적, 사실적
배경
시간적 배경 : 6·25 전쟁기 1·4 후퇴 후 장마철 비 오는 날
공간적 배경 : 전후의 피난지인 부상 동래 부근의 변두리 마을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주제 : 전후의 무기력한 삶과 허무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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