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후퇴 때 청진기가 든 손가방 하나를 들고 월남한 이인국 박사는 서울이 수복되자마자 병원을 차렸다. 그 병원이 이제는 규모가 꽤 커졌다.
이인국 박사의 병원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먼지 없이 깔끔한 병원에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다른 병원에 비해 병원비가 두 배로 비싸다는 것이다. 그는 병원비를 부담할 수 없을 것 같은 환자는 처음부터 받지 않는다. 그야말로 환자를 가려 받는 것이다. 환자가 사상범이라는 말에 입원을 거부한 일도 있었다.
이인국 박사는 십팔금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보았다. 이 회중시계는 이인국 박사의 삶과 함께해 온 소중한 것이다. 2시 40분, 20분 후 미국 대사관의 브라운 씨와 만나야 한다.
이인국 박사는 서랍에서 미국에 가 있는 딸 나미가 보낸 편지를 한 통 꺼내보았다. 아내가 죽고 아들마저 생사도 확인할 수 없을 때 유일한 피붙이였던 딸이 이제 미국에서 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것이었다. 서운한 마음을 아내에게 말해보지만 아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내 혜숙은 이인국 전처의 자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기 때문이다. 둘은 서울에서 다시 만나 의사와 간호원으로 함께 일하다 시간이 흘러 부부가 된 것이다. 아들은 러시아로 유학 보냈는데 6.25가 터지자 아들과는 연락이 끊겼다.
이인국은 미 대사관 브라운 씨에게 줄 선물을 챙겨 그의 관사로 가는 길에 과거 회상에 잠긴다. 소련군이 북쪽에 들어온 상황, 이인국 박사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감옥에 잡혀와 있다. 소련 병사에게 자신의 시계를 빼앗기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감옥에 이질이라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고 의사였던 이인국은 감옥 책임자인 스텐코프 소좌에게 불려 가 응급 치료실에서 일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인국은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스텐코프 소좌의 왼쪽 뺨의 혹을 치료할 기회를 엿본다. 그리곤 어설픈 노어와 손짓을 동원해 스텐코프 소좌를 치료하게 되고 고마워하는 스텐코프에게 자신의 시계를 찾아달라고 말해 시계를 되찾게 됐다.
다시 현재, 이인국은 브라운의 관사에 도착했다. 브라운의 방에는 ‘조선왕조실록’등의 귀한 책들과 조선의 보물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걸 본 이인국은 씁쓸함은커녕 브라운이 자기 선물에 시큰둥하면 어쩌나 만을 걱정했다. 그의 걱정과는 달리 브라운은 기뻐하고 그런 브라운에게 미국으로 출국하는 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의 일도 부탁을 했다.
브라운의 관사를 나온 이인국은 일본, 러시아 놈들 사이에서도 살아남았는데 미국이라고 다르겠냐 싶은 생각을 한다. 세상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어도 자신은 기어이 살아남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행기 표를 예약하러 간다.
소설가이자 국문학자이다. 간결한 문체와 압축된 구성력으로 소설을 썼다. 국문학자로서 신소설 연구에도 힘썼다.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다니고 대학원을 수료했다. 이후에는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지냈다. 1955년 단편 ‘흑산도’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의 작품은 사회 현실의 부정적인 요소를 강하게 고발하는 것이 특징이며 이 과정에서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인국 : 주인공이자 기회주의자이다. 외과의사로 권력과 돈을 지향한다. 시대 변화를 빨리 읽어서 시류에 편승하는 인물이다.
혜숙 : 이인국의 병원에 고용된 간호사였으며 지금은 이인국의 두 번째 아내이다.
스텐코프 : 이인국이 수감 중 그의 혹 제거 수술을 해주면서 그를 캡틴 리(꺼삐딴 리)라 부른다. 이인국 아들의 소련 유학을 도와주었다.
브라운 :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인국의 딸의 미국 유학을 도와주었다.
이나미 : 이인국의 딸로 미국으로 유학 갔다가 미국인과 결혼하고자 한다.
이원식 : 이인국의 아들로 러시아로 유학 갔지만 지금은 생사를 알 수 없다.
영어 captain(캡틴)을 러시아 식으로 발음한 꺼삐딴은 친소파에서 친미파로 변한 이인국 박사의 기회주의적 면모를 비판한 것이다. 역사적 전환기마다 대의를 저버리고 자기 한 몸을 위해 살아가는 이인국 박사와 같은 기회주의적 인간들을 비판적 시각에서 풍자했다. 동시에 역사의 중대 고비마다 기회주의자의 득세를 조장했던 우리 정신사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역사왜곡, 역사의식의 소멸이 과거 문제가 아닌 오늘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한다.
대학 졸업 때 받은 회중시계는 이인국이 가장 아끼는 물건이다. 그 이유는 인생의 전환기마다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분신과도 같은 회중시계는 그가 걸어온 인생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일왕에게 받았다는 점에서는 그의 반민족적 사고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소설에서는 현재에서 과거 자기가 겪은 고비를 하나씩 회상하는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현재에서 과거로 이동할 때마다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회중시계이다.
이인국 박사는 일제 강점기에는 제국 대학을 졸업하고 친일 행위를 하면서 친일파로 득세했다. 광복 후에는 소련군 군의관의 혹을 제거하면서 친소파로 명맥을 유지했다. 월남 후 미국이 득세하자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브라운에게 고려청자를 선물하며 친미파로서 부와 명예를 지키는 데 성공한다.
이인국이라는 인물이 박사답지 않은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작가는 일관되게 박사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다. 그 이유는 당시 ‘박사’라는 칭호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박사답지 않은 박사의 모습을 형상화함으로써 당시 부패한 사회상과 지도층의 모습을 풍자하려 했다.
갈래 : 단편소설, 풍자소설
배경
- 시간적 배경 : 1940년대 일제 강점기 말 ~ 1950년대
- 공간적 배경 : 남한과 북한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성격 : 풍자적, 비판적
특징
- 역사적 전환기마다 변하는 주인공의 행동을 ‘회중시계’라는 소재와 연관해 나타내고 있다.
- 현재-과거-현재의 입체적 구성 방식으로 전개된다.
주제
- 시류에 따라 변절하면서 순응해 가는 기회주의자의 삶에 대한 비판
- 출세 지향적 삶과 왜곡된 현대사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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