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들이 준 정종을 한 병들고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 탔다. 기차에서 나와 마주 앉은 ‘그’를 보게 된다. 그는 일본 옷, 옥양목 저고리, 중국식 바지 이렇게 삼국의 복장을 하고는 천박한 행동을 했다. 우리의 옆에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있었다. 그의 모습에 점차 호기심을 느끼게 된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눈다. 나는 그로부터 9년 전 고향을 떠난 사정을 듣게 된다. 과거 대구 근교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그는 일제의 착취와 수탈에 못 이겨 서간도로 갔다. 그때가 그의 나이 17살이었다. 서간도에 갔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였고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셨다. 나는 그를 위로도 할 겸 함께 술을 나누어마신다. 그는 서간도를 떠나 신의주, 일본 등을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고향은 폐허가 되었고, 자신과 혼담이 있었던 여인 ‘궐녀’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궐녀의 아빠가 그녀를 20원에 유곽에 팔아버렸었는데 궐녀는 몸과 마음이 다 상해 지금은 일본인의 집에서 아이를 돌봐주고 있다고 했다. 참담함에 말을 잃은 나는 그와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고, 그는 우리가 어릴 때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부른다.
볏섬이나 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
현진건은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이다. 빈처 이후의 작품들 모두 일정 이상으로 작품의 질이 균일하다고 평가받는다. 1920년대 함께 활약한 김동인, 염상섭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다. 특히 그를 가장 높게 볼 수 있다는 점은 그의 저항의식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친일행위를 하였다는 사실로 볼 때 현진건의 저항의식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식민지 조선의 처절한 삶이 잘 묘사되어있다.
‘운수 좋은 날’에서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삶이 담겨있다. ‘무영탑’, ‘흑치상지’ 같은 역사를 다룬 장편소설들도 있다.
현진건의 작품은 장편보다는 특히 단편들이 수적으로도 더 많고 평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나 : 작품의 서술자로 ‘그’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조선의 현실을 깨닫고 결국 그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당대의 지식인이다.
그 : 일제의 핍박을 피해 떠돌다 돌아온 사람이다. 당대 우리 민족의 비참한 현실을 드러내는 인물로 작가의 현실 비판 의식이 담겨있는 인물이다.
궐녀 : ‘그’와 혼담이 있었지만 가난으로 유곽에 팔려간다. 지금은 일본인의 집에서 일하는 인물로 당시 한국 여성들의 비참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설 ‘고향’은 액자소설의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주된 내용은 내가 ‘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여기서 나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고 ‘그’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매개로 나와 그는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민족적 동질성을 재인식하게 된다.
서두와 마무리 부분은 바깥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서두에서는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나’와 ‘그’가 만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무리에서 ‘나’와 술을 나누어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부분들은 액자소설 구성에서 바깥 이야기 부분이다. 일제에게 농토를 빼앗기고 이주한 간도에서 부모가 죽자 이리저리 떠돌다 고향에 돌아온 그의 이야기와 혼담이 오갔던 여인을 만난 이야기가 안 이야기 부분이다.
이 작품은 그가 민요를 부르며 끝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서 ‘그’가 부르는 민요는 신민요인데 이전 민요 가락을 빌려와 당시의 사회적인 참상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채워놓은 노래를 신민요라고 한다. 여기에서의 민요는 당시의 사회상을 제시하고 있다. 민요를 통해 주제를 압축해서 드러내고 작품에는 현실감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민요에서 말하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바른말로 일제의 정책을 비판하는 지식인을 말하는 것이며 인물이나 좋은 계집이라는 말은 암울한 당대에 우리 민족이 겪은 고통과 수난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잘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잘 그렸다는 것이 장면에 대한 묘사라든지 사건에 대한 묘사로 드러난 것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그’라는 사람에게 듣는 그의 이야기일 뿐인데 그의 이야기, 사연에서는 당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비참함이 무엇인지 잘 드러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즉 글이 전개될수록 비참함의 크기는 커진다. 그리고는 깨닫게 되는 것이지만 비단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대가 나은 피해자들이 저렇게나 많다는 점이 너무 안타까웠다.
당시의 사람들을 지켜본 작가의 안타까움이 잘 드러났다. 일제의 억압이 많았을 당시에 꿋꿋하게 자신의 저항의식을 펼쳐나간 작가의 태도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처음에는 나 역시 그가 왜 그런 복장으로 기차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는 아마 서술자인 ‘나’에 잘 동화되어서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점차 그를 향한 ‘나’의 심리가 변화하듯 나 역시 그가 그런 복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에 안타까웠다. 한 잔의 술로나마 그 아픈 사연을 잠시 위로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민요를 부르며 자신의 한스러운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덜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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