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천 개의 파랑(천선란) /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
휴머노이드 로봇 브로콜리를 만나다
경주마에 앉을 기수를 대신해 만들어진 휴머노이드, 로봇 브로콜리, 줄여서 콜리.
콜리는 경주마에 앉기 좋은 무게와 크기로 만들어졌지만 실수로 잘못된 칩을 넣어 만들어진 바람에 다른 휴머노이드들과는 조금은 다른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콜리는 경주마 투데이가 가혹한 경마장의 환경에 다리에 무리를 느끼고 힘들어하자 투데이를 위해 낙마를 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투데이를 찾아오는 연재의 언니, 은혜. 은혜는 휠체어에 앉아 생활을 해야 하는데 모두가 렌즈삽입술을 하는 세상에서 자신처럼 수술을 하지 않고 지내는 친구가 어느 날 자신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 렌즈삽입술을 해서 끝내 타인들과 같아지는 삶을 선택한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는다.
여기선 나도 놀란 점이 렌즈삽입술이 보험이 된다는 설정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미래세상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은 라식이나 렌즈삽입술은 보험이 되지 않아 거금을 들여 큰 맘을 먹고 해야 하는 현실에 조금은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 역시 라식을 생각하고 갔더니 렌즈삽입술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고민을 하다가 돌아와야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렌즈삽입술이 보험이 된다니,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책에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로봇에게서 마음을 보다
각설하고 은혜는 투데이를 보러 곧잘 경마장에 가고는 했다. 그런 은혜를 찾기 위해 경마장을 찾았던 연재는 그곳에서 처음 보게 된 콜리에게 마음이 가고 자신이 번 돈을 몽땅 쏟아부어 콜리를 집으로 데려온다. 함께 로봇대회에 나가기로 한 지수에게 지원받은 (정확히는 지수 아버지에게) 부품들로 콜리를 고쳐주고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콜리는 가족들의 마음을 고쳐주게 된다.
은혜와 연재의 어머니인 보경은 소방관이었던 남편이 죽은 후에 멈춰있는 삶을 살았었다. 그저 하루하루 바쁘게 식당일을 하면서 살았는데 그녀 앞에 나타난 콜리는 그녀의 말을 잘 들어주었고 때로는 그녀가 슬픈 마음에서 조금은 헤어 나올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그녀도 조금은 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재에게는 인간에게는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속내를 알 수 있는 기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 알겠지라는 생각은 이제부터 접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세상에는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행동이나 얼굴 표정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많겠지만 어떤 때에는 반드시 말로 해야지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 우리는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
책을 읽으며 나도 어느새 콜리에게 스며들었다. 콜리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지만 콜리의 마음은 인간에게 와닿았다. 어쩌면 콜리는 인간보다 더 인간을 잘 아는듯해 보여서 내 옆에도 콜리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리는 마지막까지 달리고 싶어 하는 투데이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낙마시킨다. 그런 콜리의 눈에는 하늘이, 천 가지의 단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천 개의 파랑이 펼쳐져있으니 나는 콜리의 선택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으나 콜리는 행복했을 것만 같다는 위로를 해보고 싶다. 콜리가 알려주지 않았는가?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다고!
천 개의 파랑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
이 소설에서 은혜는 길을 나서기 전에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가 있으나 이용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은혜를 다르게 보고 도움을 주려했다. 그러나 정작 은혜가 원하는 것은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느끼듯이 몸이 불편한 사람도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사회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단적인 예로 미국에는 장애인을 대중교통에서 보는 것이 아주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대중교통에서 흔히 그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 저상버스같이 장애인을 배려하는 장치는 나름 많이 구축이 되었지만 승하차하기에 오래 걸리는 시간을 사람들이 참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가끔씩 뉴스가 되기는 하지만 그것을 개선하는 것은 사회와 함께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배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울려 살아가야만 한다.
이 지구는 다양한 사람들과 동물, 식물이 다 함께 살아가는 곳임을 모두가 마음에 새기고 이기적인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