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부터 1980년대의 대만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여러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그중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포함되어 있어서 관심이 갔다.
예치우성은 할아버지 예준린이 살해당한 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기도 하다. 글로만 보아도 충격적인 장면을 직접 본 예치우성의 충격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예치우성은 언제나 할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고자 한다. 그와 동시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예치우성은 조금은 한심한 인물이 된 것 같았다. 하위권 고등학교에 간 그는 언제나 싸움을 하면서 다녔으며 그로 인해 가까스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지경에 이르렀다. 뒤늦게 마음을 잡는가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실패하면서 입대한다.
마오마오와 헤어지게 되었을 때에는 진심으로 안타까웠지만 샤오잔(자오잔숑)과 다시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을 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가 충동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로 인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그가 죽지 않은 것이 이 소설에서 가장 신기한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혼란스러운 시절의 대만을 배경으로 해서 그 시절 대만에서 살았을 사람들의 고충이 간접적으로나마 느껴졌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격렬한 전쟁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고 이념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 이길래, 우리가 아니면 죽여야만 하고 정복해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궁극적으로는 이념보다는 집권이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을 치러서라도 집권을 하여 자신들의 이념이 맞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 시절, 이념보다는 살기 위해서 싸웠을 많은 사람들의 슬픔이 작품 속에 녹아있는 듯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할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재미도 있었지만 진정한 재미는 문장으로부터 그려지는 생생함에 있었다. 글을 읽어나갈 때마다 마치 그곳에 있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예치우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릴 때에는 정말 대만의 거리를 달리는 것 같았으며 그가 중국으로 갔을 때에는 함께 중국에 간 것만 같았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따라 글을 읽으니 읽다가 멈추는 시간이 아쉬울 정도였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이 재미있다는 말로 모든 것을 함축할 수 있을 것 같다.
할아버지 예준린을 죽인 범인이 누구일지를 의심하면서 읽어나가기도 했는데 초반에는 샤오잔이 의심스럽기도 하고 가오잉썅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할아버지 예준린의 양자이자 국민당 유격대 대장 슈알후의 아들인 위우원 삼촌으로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예치우성이 할아버지의 총과 함께 발견된 곳에 있었던 왕커창일가의 사진을 보고 변한 삼촌의 표정 변화에서부터였다. 그렇다고 정확하게 추리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렴풋이 위우원 삼촌이 할아버지를 죽였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흐르는 시간과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을 잠시 엿보고 온 듯했다. 왕커창도, 예준린도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렇다고 용서받을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예준린은 왕커창의 아들인 위우원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인 것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언제부터 예준린은 위우원이 슈알후의 아들이 아니라 왕커창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예준린이 왕커창을 죽이고 시간이 흘러 왕커창의 아들이 예준린에게 복수하고, 그렇게 역사는 흘러간다는 것을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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