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규칙한 생활과 삶에 대한 권태로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나는 요 며칠 수면장애와 신경과민에 시달리고 있다. 친구 H가 평양에 같이 갈 것을 권하자 망설이다 기차를 탄다. 기괴한 차림을 한 장발의 걸인을 만나 동질성을 느끼기도 하고, 악몽을 꾸기도 한다. 남포에 도착한 나는 3원 50전에 3층짜리 집을 지었다는 김창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일행 등과 김창억을 방문한다. 김창억을 본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실험실에서 수염이 덥수룩했던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 선생님은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청개구리의 오장을 꺼내 대 발견을 한 듯 소리를 질렀던 사람이었다.
김창억이란 사람은 원래 부호의 아들이었지만 일찍 부모가 돌아가시고 아내와 재산마저 모두 잃은 가난뱅이였다. 이에 정신이 이상해져 간 김창억은 3층짜리 집을 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후 Y에게서 편지를 받은 나는 김창억의 3층 집이 불에 타버렸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김창억이 산으로 들어가면서 집을 관리할 사람이 없자 불을 질렀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말이다. 편지를 받은 나는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평양에 없을 것이라 생각되었던 김창억은 평양에서 자기가 버린 후처의 집 근처에 있었다.
염상섭은 시대상을 세밀하게 잘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이다. 서울 출신인 염상섭은 작품에도 서울 사투리를 잘 표현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 작품인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집필했고, 대표작으로는 고전소설인 완월회맹연, 명주보월빙에 이어 한국의 현대소설 중 최초의 가정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삼대’가 있다.
화가 나혜석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그녀를 모델로 한 소설 ‘해바라기’를 쓰기도 했다. 이 작품은 한때 그녀를 흠모해서 쓴 것이다.
나 : 작품의 서술자로 3.1 운동의 실패로 인해 심한 절망과 좌절감을 느끼는 젊은 지식인이다. 친구 A군, H군, Y군과 평양에 가서 김창억이란 인물을 만나게 되고 그와 만난 일을 다른 친구 P군에게 편지로 알린다.
김창억 : 주인공이다. 어려서는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었다. 억울한 감옥살이를 할 동안 후처는 가출하였다. 정신이상자가 되어 괴이한 행동으로 이상을 펼치려 한다.
나와 김창억이라는 인물은 3.1 운동의 실패 후 좌절감을 느끼는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청개구리도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청개구리는 중학교 때 선생님에 의해 해부가 된 것처럼 육체적으로 파괴되고 정신적으로도 상실감을 느낀 채 살아가는 ‘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1921년 동인지 <개벽>에 발표한 작품인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염상섭의 데뷔작이다. 이 작품의 김창억이란 사람의 실제 모델이 있었으니 바로 소설가 김동인이다. 그 당시 문단의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김동인 역시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글로 반격을 하면서 염상섭에 대한 조롱을 작품에 담았다. 두 사람은 20여 년이 지난 후방 후에 화해를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한국 현대 문학 사상 최초의 자연주의 수법으로 쓰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자연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쓴 소설인 자연주의 소설은 1920년대 이광수의 계몽 소설에 대한 반발로 전개된 것이다. 그래서 서구의 자연주의 소설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당시 사회와 인물의 내면까지 날카롭게 해부를 하듯 파헤쳐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적인 고뇌를 매우 예리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에 당시의 시대상을 잘 녹여내고 있는 것 같다. 염상섭 역시 당시의 사람들을 대변할만한 인물들을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당시 사람들의 고통을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기 전, 예전에 접했던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단지 난해하기만 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을 알게 되니 작품 속의 인물들이 왜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는지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역시 염상섭 작가와 김동인 작가의 일제강점기 판 쇼미 더 머니, 디스 배틀이라는 점이었다. 어쩌다 이런 식으로 서로 다투게 되었는지는 추측만 해볼 뿐이지만 이들의 싸움을 지켜본 당시 문단의 사람들은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다. 랩으로 싸우는 모습은 보았지만 이렇게 문학작품으로 싸우다니, 그 정성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에 상대를 대변할만한 인물을 만들어내고 또 시대상을 반영하고, 사건 등 여러 가지를 설정해서 글로 써내야 하니 말이다. 그야말로 상당한 시간과 힘을 소비했다. 이렇게 서로를 격렬하게 까 내리고 해방 후에 화해를 한다는 것도 대단하다 싶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그들의 세계를 잠시나마 엿보고 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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