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후면 모든 것이 끝난다.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들에겐 모두가 평범한 일들이다. 싸우다 죽는 것, 그것뿐이다. 무엇을 얻기 위한다는 것, 그것도 아니다. 인민군에게 잡는 나는 처형되기까지 1시간의 삶이 유예되었다.
수색대 소대장인 나는 부하들을 이끌고 북으로 진격한다. 일행은 수차례의 전투를 거치면서 적의 배후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본대와의 연락은 끊어졌고 후퇴하기도 쉽지 않다. 기아와 피로에 낙오자는 점점 늘어가고 눈 속에 쓰러지는 부하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을 남겨놓고 후퇴를 할 수밖에 없다. 어디선가 일발의 총성이 울림과 동시에 선임하사가 쓰러졌다. 그를 끌고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벽이다. 전투가 재미있다고 하던 선임하사는 이제 자기가 죽을 차례가 되었다고 말하며 의식을 잃어간다. 다시 눈 속을 헤치고 남으로 걸어갔다.
이튿날 산 아래에 버려진 마을이 보였다. 그곳에서 한 청년이 총살당하기 직전에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청년은 잠시 후 총살될 것이다. 그 병사가 마치 나 자신인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적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상대방의 응사로 나는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고 결국 나는 그들의 포로가 되었다.
“한 시간 후 동무의 답변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것이오.”
포로가 된 후 적의 회유와 심문이 있었지만 나는 죽음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준비 완료 보고와 집행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눈 덮인 둑길을 걸어간다. 끝나는 일초일각까지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평안북도 선천군 출생으로 1930년 11월 5일에 태어났다. 용산고등학교를 거쳐 1953년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1955년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유예’가 당선되어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1958년에는 ‘모반’으로 제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다가 이듬해인 1960년 동아일보로 자리를 옮겨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다. 1963년 4월 동아방송이 개국하자 뉴스부 차장에 보직되어 1968년까지 역임했다.
1973년부터는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근무하다가, 1985년 12월 3일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대한민국의 전후(6.25 이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전후 소설가들 중 가장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쓴 작가로 평가받는다. 프랑스의 행동주의 문학과 실존주의 문학을 접한 그는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빚어진 인간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나 : 국군 소대장으로 적의 추격으로 홀로 남아 저항하다가 결국 포로로 붙잡히게 된다. 전향을 거부하다가 처형당하는데 처형을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죽음과 인간의 실존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한다. 죽음이 아무것도 아님을 느끼게 되면서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지키는 인물이다.
그들(인민군) : 나와는 전쟁으로 인한 갈등관계에 놓여있는 인물들로 아무렇지 않게 ‘나’의 죽음을 집행한다.
극단적 상황이 그에게 삶과 죽음의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이 작품 속의 ‘죽음’은 실존적 의미를 지닌 유의미한 끝이다.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자기를 완성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끝나는 순간까지 정확히 나를 끝맺어야 한다.” 라든가 “끝나는 일 초 일각까지 나를, 자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다짐의 반복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그’에게 죽음에의 의지는 곧 실존적 인간에의 의지인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전향 여부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한 시간의 유예 기간을 ‘그’는 죽음의 유예 기간으로 받아들이며 이데올로기의 전향 여부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뇌도 하지 않고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몰가치성을 깨달은 주인공은 이데올로기에 자신의 삶이 휘둘릴 수 없다는 실존적 인식에 이른 것이다. 또한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흰 눈은 작품 전체의 배경이 되고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나’의 죽음에는 아랑곳없이 흰 눈은 변함없이 아름답게 빛난다. 흰 눈은 나의 죽음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이 총살되기 직전의 냉혹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통하여 인간 생명에 대한 무관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흰 눈이 주인공이 흘리는 붉은 피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렇듯 흰 눈과 붉은 피의 선명한 이미지의 대조를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1인칭 주인공 시점과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 교차되는 서술방식이 나온다.
주인공의 독백 부분에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인물의 내면 심리나 개인의 자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나’가 총살당하는 부분에서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해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시점의 교차를 통해 극도의 긴장상황에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모습을 지키려는 주인공의 의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갈래 : 단편 소설, 심리 소설, 전후 소설, 상황 소설
성격 : 독백적, 실존적
배경
시간적 배경 : 6·25 전쟁 당시의 겨울, 한 시간이라는 삶의 유예기간
공간적 배경 : 폐허가 된 어느 산골 마을의 움막과 눈 덮인 들판
시점 : 독백 형식의 1인칭 주인공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이 혼용되어 사용됨
주제 :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이 겪는 실존적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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