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인 ‘나’는 피곤할 때면 화실 벽에 걸린 조그마한 액자의 편지를 읽는 버릇이 있다. 편지는 매우 서툰 글씨로 되어 있으며 중간의 일부분만 있어 누가 누구에게 보낸 것인지도 알 수 없으나, 그 내용으로 보아 시골에 있는 늙은 아버지가 서울에 돈 벌러 올라간 아들에게 쓴 것으로 짐작된다.
3년 전 가을, 은행에 근무하던 친구가 휴지 같은 편지를 가져와 장난스럽게 표구를 부탁하면서 지게꾼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청년은 은행 문 앞에 지게를 벗어 세워 놓고는 매우 죄송스러운 태도로 은행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안내원에게 저지당했으나 예금 창구 여직원의 안내로 통장을 만들게 되었고, 다음 날부터 그는 매일 저녁 무렵이면 은행에 들러 적은 돈이지만 저금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은 저금통의 동전을 종이에 싸 왔고, 동전을 싸 온 종이를 친구가 주워 온 것이 바로 그 편지였다.
편지의 내용과 친구의 장난기에 웃음이 나온 ‘나’는 편지를 표구사에 맡겼다. 그 후 ‘나’는 그 편지를 잊고 지내다가 은행 친구가 외국 지점으로 전근을 떠난다고 할 때 문득 그 편지가 생각났다.
그리고 표구사에 가서 표구된 편지를 찾아서 화실에 걸어 두었다. 그 액자는 차츰 화실의 중심이 되어 갔고, ‘나’는 점점 그 친구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평안남도 신안주 출생으로 평양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했다. 8.15 광복 후 귀향했다가 김일성이 이끄는 북한의 공산당이 지주들을 탄압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하자, 1946년 홀로 월남하여 미군정청 통위부, 금강전구회사 회계과 등지에서 근무하는 한편, 동국대학교 전문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학업을 재개했다. 이듬해인 1947년에는 부인 홍순보 또한 월남하여 서울에 새 터전을 꾸리게 되었다. 1948년부터는 연희대학교 교무과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부인과 함께 연희대학교 사택에 거주했다.
1949년 동국대학교 전문부 졸업 후에는 교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한 출신의 실향민이라는 이유 때문에 온 가족이 다락방에서 숨어 지내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소설을 본격적으로 집필하게 된다. 1952년 동국대학교 본과를 졸업했고, 1954년 서울로 돌아와 성북구 안암동,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현 경기도 안양시) 등에서 셋방을 얻어 살았다.
1955년부터는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고, 이때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해 『현대문학』 4월호에 단편 ‘암표’, 12월호에 단편 ‘일요일’을 각각 투고했다가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본격적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1982년부터는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문리과대학장으로 근무할 예정이었으나, 2월 28일 자택에서 뇌일혈·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줄곧 경희의료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오던 중 결국 1982년 3월 13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답십리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20년 학촌 이범선문학상이 제정되었다.
나 : 은행에 다니는 친구가 주운 낡은 편지를 받는 화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낡은 편지를 액자에 넣어놓고 내용을 읽는 버릇을 갖고 있다.
친구 : 은행에 다니는 ‘나’의 친구로, 어릴 때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은행에 매일 오는 지게꾼 청년을 유심히 보다가 그가 놓고 간 편지를 주워간다.
지게꾼 청년 : 매일 은행에 가 저금을 하는 청년으로 순박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다.
편지 속 아버지 : 자나 깨나 아들 걱정뿐인 아버지로 아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소설에서 작품의 제목은 중심 소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글의 주제와도 관련이 깊다. 제목 ‘표구된 휴지’에서 ‘표구되다’라는 의미는 그림의 뒷면이나 테두리에 종이 또는 천을 발라서 꾸민다는 뜻이고 ‘휴지’는 시골에 사는 늙은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가 서울에 돈 벌러 올라간 아들에게 주는 편지를 쓴 종이를 빗댄 말이다. 이 소설에서 휴지통에 버려졌던 종이가 표구되었다는 것은 그 종이가 단순한 휴지를 넘어서 표구될 만큼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발단 부분의 내용으로 보아, 그 휴지의 가치는 그 속에 담긴 내용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누구나 이 편지를 읽는 순간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그것은 시골출신뿐만 아니라 서울 출신이라도 마찬가지다. 맞춤법을 모른다거나 콩나물을 참기름에 무쳐 먹으라는 말을 했다는 점이 같은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고향도 다르고, 아버지도 다르지만, 아버지들이 마음만은 다르지 않다. 특히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이라면 이런 편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묘한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감동은 그 어떤 명화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보다도 크고 깊다는 의미에서 국보급이라고 표현했다.
이 글에는 드러나는 문학적 아름다움에는 형식적인 아름다움과 내용의 아름다움이 있다.
먼저 형식적 아름다움으로는 현재-과거 회상-현재’로 이야기가 역순행적으로 진행되는 서술 방법을 통해 중심 소재인 편지가 주인공인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과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쓴, 맞춤법에 맞지 않는 편지를 중간중간에 삽입하는 방식을 통해 독자들이 중심 소재에 집중하도록 하고 있으며 주제를 개성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내용적 아름다움에서는 휴지통에 버려졌던 종이를 표구하게 된 과정을 통해 사소히 보아 넘길 수 있는 것에서도 삶의 위안을 찾을 수 있다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볼품없는 종이에 서툰 글씨로 쓴 아버지의 편지를 통해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사랑을 전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감동과 여운을 주고 있으며 지게꾼 청년의 순박하고 성실한 삶의 태도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갈래: 현대 소설, 단편 소설, 액자소설
성격 : 회상적, 사색적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배경
시간적 배경 : 1960~70년대
공간적 배경 : 서울
주제 :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소박하고 따뜻한 사랑,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삶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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