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인 형은 6·25 때 패잔병으로 낙오되었다가 동료를 죽이고 탈출한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20여 년 동안 실수 한 번 하지 않았던 그가 달포 전 수술을 한 어린 소녀가 죽게 되자 병원 문을 닫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소설 내용은 자신의 체험담이었다.
화가인 ‘나’는 한때 형 친구의 소개로 화실에 나왔던 혜인과 사랑하는 사이지만 혜인은 ‘나’의 소극적 태도에 불만을 품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형은 삼각관계를 극복하고 지금의 아주머니와 결혼한 인물이다. 형의 소설에는 표독한 이등중사 오관모, 신병 김 일병, 그리고 서술자인 ‘나’(여기서는 형을 말함)이 등장한다. 그들 셋은 패주해서 동굴 속에서 숨어 지낸다. 김 일병은 팔이 잘려 나가 썩고 있다. 오관모는 김 일병을 남색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는데, 김 일병의 부상으로 그 짓이 불가능해지자 김 일병을 죽이려 한다. 형의 소설은 거기까지만 진행돼 있었다.
나는 형 대신 소설을 쓰면서 형이 김 일병을 쏘아 죽이는 것으로 결말을 맺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나’는 ‘혜인’으로부터 ‘나’의 소극적 태도에 대한 비판을 담은 편지를 받는다. 그녀는 ‘나’ 대신 장래가 보장된 의사를 배우자로 선택한 것이다. ‘나’는 무기력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형은 내가 쓴 결말 부분을 읽고는 ‘병신, 머저리’라고 ‘나’를 욕하며 찢어 버린다. 오관모가 김 일병을 죽이고 뒤따라간 자신이 오관모를 죽이는 것으로 형은 소설을 고쳐 쓴다. 이 뜻밖의 결론은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혜인의 결혼식에 다녀온 형은 ‘나’에게 ‘김 일병이나 죽이는 머저리 병신’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자신이 쓴 소설을 태워 버린다. 형은 ‘놈(오관모)이 살아있는데 이런 게 무슨 소용이냐’면서 나머지 원고 뭉치를 불집에 집어넣는다. 결혼식장에서 오관모를 만난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형은 병원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나’는 아픔이 없는 ‘나’의 환부의 근원을 자문해 본다.
전라남도 장흥군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에 ‘사상계’ 신인상에 ‘퇴원’으로 당선되어 등단했다. 1968년 ‘병신과 머저리’로 제12회 동인문학상을, 1978년 ‘잔인한 도시’로 제2회 이상문학상을, 1986년 ‘비화밀교’로 대한민국문학상을, 1990년에는 ‘자유의 문’으로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병신과 머저리’, ‘굴레’, ‘석화촌’, ‘매잡이’등의 초기작품에서는 경험적 현실을 관념적으로 해석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발한 창작 활동을 보인 이청준은 ‘소문의 벽’, ‘당신들의 천국’ 등 무게 있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청준은 그의 소설에서 정치·사회적인 메커니즘과 그 횡포에 대한 인간 정신의 대결 관계를 주로 형상화하였다. ‘잔인한 도시’에서는 닫힌 사황과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의미를 보다 정교하게 그려내기도 하고, ‘살아있는 늪’에서는 현실의 모순과 그 상황성의 문제를 강조하기도 한다. 이렇듯 그의 소설은 사실적인 면보다는 상징적이고도 관념적인 면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청준은 1980년대 접어들면서 보다 궁극적인 삶의 본질에 대한 규명에 나선다. ‘시간의 문’, ‘비화밀교’, ‘자유의 문’ 등에서 그는 인간존재의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의 의미에 집착한다.
‘나'(동생) : 화가이다. 전후 세대를 대표하며 뚜렷한 원인 없이 현실에 대하여 무기력함과 패배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형 : 외과 의사로 6·25 전쟁을 체험한 전쟁 세대이다. 6·25 참전 중 동료의 죽음을 방치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최근에 소녀를 죽게 한 경험으로 인하여 과거에 전쟁에서 체험했던 상처가 되살아나 병원 문을 닫는다. 소설 쓰기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극복한다.
혜인 : '나'의 애인이었으나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오관모 : 김 일병을 성적으로 학대하다가 부상을 입자 그를 죽이려 하는 인물로 인간의 이기심과 현실적 부조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김 일병 : 전쟁이 벌어진 암담한 현실에서 고통받는 인물이다.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 상처를 받은 형은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 쓰기라는 창작 활동을 하지만 자신이 쓴 소설 원고를 태운다. 형은 자신이 오관모를 죽이는 것으로 소설의 결말을 맺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관모가 살아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결말이 허구임을 실제로 확인한 형은 소설이 부질없는 것이라고 느낀다. 결국 형은 소설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폭력에 굴복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절망한 나머지 소설 원고를 태우게 되는 것이다.
혜원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려고 이별을 통보한 것은 ‘나’의 적극적인 태도를 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어떤 현실적 대처도 하지 않고 방관한다. 혜원은 소극적이고 패배적이며 무기력한 ‘나’의 삶의 태도를 편지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오관모가 문제의 핵심이지만 미봉책으로 김 일병을 죽이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김 일병의 운명은 오직 관모에게 달려있는데, 이 상황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 형과 나는 차이를 보인다. ‘나’는 어차피 죽을 운명에 처한 김 일병에게서 죽음의 공포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면 관모가 김 일병을 죽여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형은 관모를 죽이는 것으로 소설의 결말을 맺는다. 부하를 괴롭히는 불의한 관모를 관념적으로 응징하는 형은 아픔을 능동적으로 극복하지만 얄팍한 자비심을 보이는 ‘나’는 여전히 패배적이고 회의적인 사고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형은 전쟁 체험의 아픔과 자신의 치료를 받았던 소녀의 죽음 때문에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동생은 형과 같은 절실한 체험도 없이 무기력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극한 상황을 경험한 형은 소설 창작의 과정을 통해 아픔을 극복하지만 동생은 여전히 아픔의 환부를 알지 못한 채 현실을 회피한다. 두 사람 모두 아픔을 지니고 있으므로 ‘병신’에 해당하지만, 자신의 환부도 알지 못한 채 무기력함에 빠져있는 동생은 ‘병신이자 머저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갈래 : 단편 소설, 액자 소설
성격 : 추리적, 심리적, 논리적
배경
바깥 이야기 : 1960년대의 어느 도시
안 이야기 : 6·25 전쟁 당시 북한 강계 지역
시점
바깥 이야기 : 1인칭 주인공 시점
안 이야기 : 1인칭 주인공 시점과 관찰자 시점의 혼용
주제 : 삶의 방식이 다른 두 형제의 아픔과 그 극복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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