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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달밤' 총정리-줄거리/해설

한국 단편소설

by julia-ss 2022. 6. 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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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나’는 문안에서 성북동으로 이사 왔다. 성북동에서 만난 황수건이라는 인물 때문에 이곳이 시골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첫날에는 집을 못 찾아 신문배달이 늦었다지만 다음날에도 역시나 늦는 모습을 보였다.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황수건은 묻지도 않은 자기소개를 했다. 황수건은 원래 삼산 학교의 급사였지만 맘에 맞지 않는 선생이 있어 나왔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지금 보조 배달원으로 신문배달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조금 부족해 보이는 황수건과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었다. 황수건과의 대화 도중 소원이 뭐냐고 묻는 내게 황수건은 정식 배달원이 디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수건은 성북동이 따로 한 구역이 되면서 자신이 드디어 정식 배달원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수건은 오지 않았다. 잘린 것이다. 잊을 만할 때쯤 황수건이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진짜 해보고 싶은 것은 장사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장사를 해보라며 삼원을 주었다. 그는 참외 장사를 시작했지만 장마 때문에 장사를 망쳤고 그의 아내는 가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며칠 전 황수건은 ‘나’를 찾아와 포도를 몇 송이 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훔친 것이었다. 결국 그를 대신해 돈을 물어주었고 ‘나’는 그 포도를 천천히 아껴 먹었다.

어제는 황수건이 담배를 피우며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길 옆의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기고 황수건을 바라보았다.

 

 

작가-이태준

호는 상허, 본명은 이규태다. 언론사에서 일했던 이태준은 이상의 천재성을 알아본 인물이다. 그는 당시 중앙일보의 사장이었던 여운형에게 부탁해 이상의 시를 신문에 내도록 도왔다. 그때 나온 이상의 시가 바로 그 유명한 ‘오감도’이다.

현진건을 추억하면서도 작품을 썼는데 ‘토끼 이야기’, ‘해방 전후’등이 있다.

광복 전까지 철원에 머물다 6.25 전쟁 이전에 월북하였다.

1933년에서 1946년까지 서울의 변두리였던 성북동에 살면서 많은 작품을 썼는데 그의 작품에는 성북동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 것들도 있다. ‘달밤’, ‘색시’등이 바로 그러한 작품이다. 이태준이 살았던 성북동 집은 현재 전통 찻집이 있다.

 

 

등장인물

: 이 작품의 서술자이다. 어수룩하지만 순박한 황수건과의 일화를 전달한다. 황수건에게서 따뜻함을 느끼며 연민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를 인간적으로 대해준다.

 

황수건 : 단순하고 어수룩하지만 천진한 인물이다. 열심히 살려하지만 하는 일마다 현실에 부딪히며 실패한다. ‘나’의 도움에 보답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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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포인트

 

 

 

황수건에 대한 '나'의 태도

한밤중에 찾아온 황수건의 엉뚱한 이야기에 황당해 하지만 곧 순박한 황수건과 이야기하기는 것을 즐긴다. 순박한 황수건이 야박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거듭 실패를 하자 안타까워한다. 황수건을 보며 각박한 현실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에게 장사 밑천을 내놓는 등 당대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인 황수건에 대한 따뜻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황수건의 특성

황수건의 일화들을 살펴보면 처음 본 ‘나’에게 거리낌 없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자신이 정식 배달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에 무척이나 기뻐하고 새 급사를 시험하기 위해 돌을 가져다 놓은 일화도 있다. 사업자금을 대준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포도를 훔쳐오기도 했다. 이렇듯 황수건은 모자라고 어리석은 면은 있지만 순수하고 착한 본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달밤 장면의 의미

‘달밤’ 장면에서는 평화롭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거듭된 실패를 경험한 황수건의 서글프고 울적한 상황을 강조하고 있지만 달밤의 평화로운 느낌으로 인해 비극성이 심화되지는 않는다. 다만 황수건에 대한 ‘나’의 연민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해 결론적으로는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주고 있다.

 

 

총평

성북동 달빛이 비치는 밤에 황수건과 ‘나’라는 인물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절로 상상이 되는 작품이었다. 모르는 사람의 이상한 이야기를 잘 받아주는 모습에서부터 따뜻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요즘은 모르는 사람이 건네 오는 이야기는 거의 받아주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더욱이 그 이야기가 이상하면 그 사람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넘길 것이다. 하지만 달밤에 나오는 ‘나’라는 인물은 기본적으로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황수건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그의 안타까운 상황에 공감해주었다.

황수건이라는 인물은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 답답함도 어쩌면 착한 천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고마운 마음에 포도를 가져온 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것조차 훔친 포도라니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저렇게까지 순진하다면 순진한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걱정되었다. 너무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처럼, 그래서 그의 곁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의 삶은 고될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했다.

아주 오래전에 작품을 보았던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의 희미한 기억만 있을 뿐 그 이야기도, 감상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번에 이렇게 다시 작품을 접하니 힘들지만 따뜻한 세상에 들어갔다 온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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