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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논 이야기' 총정리-줄거리/해설

한국 단편소설

by julia-ss 2022. 6. 2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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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한생원은 일본인들이 토지와 재산은 죄다 그대로 두고 쫓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한다. 광복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만세를 부를 생각 없이 덤덤했었다. 하지만 이 소식에 한생원은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한생원에게 광복은 공출이나 징용과 같은 두려운 몇 가지가 없어진다는 의미였을 뿐이었다. 어느 나라 관리가 다스리든 소작농이 뼈 빠지게 농사지어 세금 내는 건 같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한생원은 아버지가 마련한 논 스무 마지기 중 열세 마지기를 뺏긴 기억을 갖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한 인물들을 찾아내 죽이는 과정에서 한생원의 아버지 한태수가 잡혀갔다. 아버지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한 적이 없지만 고문을 못 이겨 거짓자백을 하게 된다. 처형만 기다리던 때 이방이란 자가 한생원의 어머니와 한생원에게 논문서를 가져와 사또에게 바치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아버지 한태수를 살리기 위해 논문서를 뺏겼다. 그렇게 땅을 빼앗긴 것이다. 그 후 일제강점기가 되고 다시 광복이 될 때까지 달라질 것 없는 현실을 살았다.

한덕문, 즉 한생원 그는 술과 노름을 좋아해 갚기 힘들 만큼의 빚을 쌓았다. 그때 일본인인 길천이가 높은 값에 땅을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은 논을 팔았다. 하지만 계획과는 달리 시세가 올라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는 땅을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을 판 한덕문을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덕문이 길천이게다 논 팔아먹던 대 났구나’라는 속담까지 생겨 해방 때까지 무려 34년간 사용되었다.

해방이 되고 한덕문이 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된 바람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송생원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못 불렀던 독립만세를 한번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까지 할 정도였다. 한덕문과 송생원은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자신의 땅으로 가보니 영남이 있었다. 길천이에게 위임장을 받은 강태식이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을 넘겼다는 것이다. 구장을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없음을 깨달은 한덕문은 나라가 이제는 백성 땅을 빼앗아 간다고 원망한다.

그리고 독립됐다고 했을 때 만세 부르러 안 나가길 잘했다는 말을 한다.

 

 

작가-채만식

와세다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한 채만식은 학업도 열심히 했지만 축구 선수로도 활동했지만 관동대지진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졸업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1924년 <조선문단>에 ‘세 길로’를 발표하며 등단한다. 이후 그는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보여주며 한국문단에 자신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져나갔다. 대표작으로는 세대 간의 가치관 갈등과 대립으로 대지주 집안이 붕괴되는 과정을 담은 가족사소설인 ‘태평천하’와 정 주사네 일가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혼탁한 당시의 사회 현실을 그려낸 소설 ‘탁류’가 있다.

그의 작품에는 우리 고유어와 사투리를 풍부하게 구사한 문체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설화체 문장을 사용해 이야기를 입체적이고 생동적이게 만들었다.

 

 

한 생원

한생원이라는 인물은 부지런한 아버지와는 달리 게으르고 허황된 인물로 묘사된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논을 빼앗긴 일이 있다. 어려운 형편에 술과 노름으로 빚을 지고 남아있는 땅마저도 팔게 된다. 해방이 되면 자신이 길천에게 판 땅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된 희망을 품을 정도로 어리석은 인물이다. 한생원은 전형적인 농민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국가의 해방도 무의미하다는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실제로 자신의 기대가 좌절되자 만세를 안 부르길 잘했다고 말하며 왜곡된 국가관을 가진 인물로 그리고 있다.

 

 

풍자문학

채만식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풍자이다. 이것은 작가가 당대의 현실을 고민한 결과이다. 1934년 이후 채만식은 본격적으로 풍자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작품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녹여냈다. 채만식의 풍자는 ‘탁류’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당대 식민지 현실을 풍자라는 수법을 사용해 보여주고 있는데 부정적인 인물들을 부각하고 긍정적인 인물들을 희화화했다. 이렇게 채만식은 한국 근대 풍자 문학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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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포인트

 

 

 

논의 상징성

논은 농민들에게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의 터전이다. 그래서 논을 빼앗긴다는 것은 땅을 빼앗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박탈을 의미한다. 이 소설은 논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현실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다. 정성을 기울여 농사를 지어도 이리저리 돈 내다보면 식량 확보조차 쉽지 않은 소작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는 이유다. 한생원의 논으로 대표되는 농토를 해방 후에도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정부가 들어섰지만 친일파들을 중심으로 한 지주 세력의 기득권은 계속 유지되었다.

농민들의 생존문제가 해방되고도 해결되지 않았음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상황에 따른 한생원의 심리 변화

나라가 망한 상황에 잘 망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일제강점기 역시 조선시대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라가 해방을 맞았을 때에도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하고 덤덤했다. 해방이 되고 일본 사람들이 재산을 내놓고 쫓겨 가게 되자 빼앗긴 땅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에 들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라에서 일본인의 재산을 되팔아 자신의 땅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상황이 되자 기대가 무너지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총평

한덕문이라는 사람이 꾸는 허황된 꿈을 답답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아버지가 열심히 모아서 마련한 땅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가담하지도 않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다며 데려가 온갖 고문을 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 아무나 데려가고 보는구나 싶었다. 심한 고문을 하니 아무 이름이나 부른 것이고 그것이 또 아무 이름으로 이어지고, 죄 없는 백성들만 죽어나가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한덕문의 아버지 한태수도 마찬가지로 그런 피해자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논문서를 내놓아야 했다. 그렇게 땅을 빼앗기고 남은 땅을 한덕문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술과 노름에 빠져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땅을 팔다니, 한심했다. 그리고 길천에게 돈을 받아 빚 갚고 다시 땅을 살 수 있다는 생각부터가 허황된 것이었다. 어느 누가 돈 많이 쳐주는 길천에게 안 팔고 덕문에게 팔겠는가 말이다. 이 작품은 이런 덕문의 어리석은 모습에 대한 풍자가 잘 되어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크게 비난하고 싶었던 것은 백성들을 이런 상황으로 몰아간 나라였다. 그들은 이전에도 후에도 백성들은 지켜주지 못했고 어수선한 상황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결국 기득권일 뿐이었다. 언제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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