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든 중원사의 등신불에 대해 보고 들은 그대로를 적으려 한다. ‘나’는 정원사라는 먼 이역의 고찰을 찾게 된 연유부터 밝힌다.
나는 스물세 살 때인 1943년 일본의 대정대학 재학 중에 학병으로 끌려 왔으나 목숨을 건지기 위해 탈출을 결심한다. ‘나’는 대정대학 유학생 출신인 불교학자 진기수 씨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한다. 그가 적국의 웃을 입은 ‘나’를 믿지 않자, '나'는 오른손 식지를 깨물어 혈서를 쓰며 절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경암 대사의 뒤를 따라 정원사에 도착한 '나'는 원혜 대사를 배알 한다. 경암이 건넨 진기수 씨의 편지를 본 노승은 "불은이로다."라고 말한다. 원혜 대사의 시봉인 청운의 안내로 등신불을 접한 '나'는 전율과 충격에 휩싸인다. 그것은 불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초라하고 애절한 느낌의 결가부좌상이었다.
‘나’는 청운으로부터 소신공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몸이 부르르 떨리지만 아무래도 석연치 못한 것을 느낀다. 소신공양으로 성불을 했다면 부처님이 되었어야 하는데, 고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얼굴의 금불은 여전히 '나'를 의문스럽게 만든다.
그날 저녁 청운과 함께 원혜 대사에게 저녁 인사를 갔을 때 원혜 대사는 ‘나’에게 ‘만적선사소신성불기’를 읽으라고 한다. 내가 기록을 읽고 나니 원혜 대사가 '나'를 불러 등신금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마친 원혜 대사는 '나'에게 남경에서 진기수 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 입으로 살을 물었던 오른손 식지를 들어 보라고 한다. 그러나 대사는 왜 손가락을 들어 보라고 했는지, 식지와 만적의 소신공양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1913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김동리 작가의 본명은 시종이다. 1929년 경신고보를 중퇴하고 귀향해 문학 작품을 섭렵했다. 1934년에 시 ‘백로’가 조선일보에 입선되고 단편 ‘화랑의 후예’가 1935년 조선중앙일보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의 문학사상으로 일관해왔다.
김동리 작가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인간 구원의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그의 문학 여정은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에는 토속적이고 샤머니즘적인 동양적 신비의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의 숙명적 운명을 다루었다. 대표작으로는 ‘무녀도’와 ‘황토기’가 있다. 중기에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역사의식과 현실 의식이 강화되면서 보편적 휴머니즘을 추구한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역마’, ‘귀환장정’등이 있다. 후기에는 보다 근원적인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르면서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의식을 형상화한다. ‘사반의 십자가’, ‘목공 요셉’등이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룬 것이라면 ‘등신불’, ‘원앙생가’등은 불교적인 인간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나 : 작품의 화자이다. 일제강점기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정원사에 머문 대학생으로 금불각에 안치된 등신불을 보고 감동하여 깨달음을 얻는 인물이다.
진기수 : 중국 불교학자로 일본 대정 대학에서 유학을 하였다. ‘나’의 탈출을 도와준다.
만적 : 1200년 전, 소신공양으로 성불한 정원사 스님으로 인간의 오뇌와 비원의 화신이며, 신념이 확고한 내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중생의 죄업을 짊어지고 소신공양을 했다.
원혜 대사 : 정원사의 주지 스님이자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인물이다.
‘나’가 생각하는 불상의 모습은 세상의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오른 거룩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등신불은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온화한 모습을 갖춘 부처님의 모습과는 달리 인간적 비원과 고뇌가 서린 일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나’는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슬픔과 번뇌가 가득한 등신불의 모습은 ‘나’의 내면 풍경과 일치하고 있다.
등신불은 사람의 크기 정도로 만든 불상이다. 이 소설에서 만적은 앉은 채로 몸을 불살라 소신공양을 한다.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타다 굳은 만적의 몸에 금이 씌워져 ‘인간 불상’이 만들어진다. 인체에 금을 입힌 등신불은 자연과 초자연 간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보여 준다. 이 작품은 불교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불교의 초월적 신앙이 아닌 실존적 인간 경험과 그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고통과 번뇌로부터 적극 벗어나려 한다는 점에서, 만적의 등신불은 ‘인간이란 불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라는 점을 은연중에 보여 준다.
‘나’의 단지행위와 만적의 소신공양이 정신적으로 일치함을 암시한다. 불은은 그냥 주어지지 않고 치열한 삶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임을 넌지시 일깨우며, ‘나’로 하여금 그런 세계로 나아가기를 이심전심으로 전하려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살을 스스로 떼어 내는 희생을 치름으로써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다. ‘나’의 혈서는 만적의 소신공양과 대비되어 ‘자기희생을 통한 구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갈래 : 단편 소설, 액자 소설, 구도 소설
성격 : 불교적, 구도적
배경
시간적 배경 : 1943년 여름(액자 내부 - 당나라 때)
공간적 배경 : 중국의 양자강 북쪽 사찰인 정원사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주제 : 인간의 세속적 고뇌와 종교적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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