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그믐날 ‘나’는 시골 본가로부터 ‘조모주 병환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급히 시골로 내려간다. 여든둘이 넘은 할머니는 정신이 가물가물하기 때문에 자손들이 여러 번 바쁜 걸음을 치게 했었다. 곡성이 들릴듯한 사립문을 들어서니 할머니의 병세는 이미 악화되어 있었다.
친척이 모두 모여서 긴장된 며칠을 보낸다. 그 가운데 집안의 효부로 알려진 중모는 할머니 곁에서 연일 밤을 새워가며 간호한다. 하지만 ‘나’는 중모의 행동을 ‘우리를 야단치기 위한 밑천 장만하기’라고 생각할 뿐이다. 중모는 할머니가 빨리 기운을 회복하길 빌며 연신 염불을 외운다. 위독한 할머니를 지켜보는 자손들은 마음속으로 할머니가 빨리 돌아가시기를 기다린다.
할머니는 정신이 흐릿해져 ‘나’를 ‘서방’이라고 부르고 단추를 끌러 앞가슴을 풀어 젖히라고 하는 등 이상한 언행을 해 자손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자손들은 직장 때문에 무작정 머물 수도 없어서 한의원을 불러 진맥을 시킨다. 오늘내일을 넘기기 힘들다는 진단과는 달리 하루하루가 무사히 지나자 양의에게 다시 진찰을 받는다. 몇 주일은 염려 없다는 양의의 말에 안심한 자손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모두 떠난다. ‘나’도 할머니에게 곧 완쾌되실 거라고 위로하고 서울로 올라온다.
어느 화창한 봄날, ‘나’는 벚꽃 놀이를 막 나가려는 때에 ‘오전 3시 조모주 별세’라는 전보를 받게 된다.
호는 빙허, 대구 출생으로 1920년 <개벽>에 단편소설 ‘희생자’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21년 자전적 소설인 ‘빈처’에 이어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해 작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22년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며 ‘타락자’, ‘운수 좋은 날’ 등을 발표했다. 김동인과 함께 근대 단편 소설의 선구자로 꼽히고 염상섭과 함께 사실주의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1935년에는 동아일보 사회부장 재직 당시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1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현진건의 소설에는 식민지 치하에서 핍박받는 우리 민족의 참상과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이 은연중에 담겨 있다. 그는 사실주의 작가로서 정확하고 섬세한 묘사체의 문체를 구사했으며 긴말한 극적 구성법과 탁월한 반전의 기법으로 단편 소설의 기교를 확립했다.
나 : 작중 화자이다.
할머니 : 죽음을 거부하는 허망한 몸짓으로 가족 간의 갈등 요인이 되는 인물이다.
중모 : '효'를 수단으로 자신의 위치를 지나치게 드러내려 하기 때문에 다른 가족의 반감을 산다.
이 작품은 현진건이 신변 소설에서 객관적인 심리 묘사 소설로 변화하는 계기를 이루는 소설이다. 할머니의 죽음을 예고하는 병환 소식을 들은 양조모는 슬피 울다가 곧 신세 한탄을 하다. 양조모에게 할머니의 죽음이란 자신도 얼마 되지 않아 죽을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양모는 사회적 통념에 따라 할머니의 죽음을 호상이라 말하고 나도 양모의 생각에 동의한다. 결국 양조모와 양모, 그리고 ‘나’는 자신의 입장에서만 할머니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나’는 할머니의 임종을 앞둔 자손들의 행동에서 천륜으로 얽힌 끊을 수 없는 정보다는 인간들의 요식적인 행위를 발견하게 된다. 할머니에게 극진한 효성을 보이는 중모에게서 ‘나’는 도덕적 우위를 드러내기 위한 위선적 모습을 본다. 또한. 할머니의 처지를 비웃는 자손들의 모습에 경멸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결국 가족들을 모욕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시인하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의 죽음에 대해서 진정으로 아파하지 않는다는 반성적인 깨달음에 이른 것이다. 위장된 허위성은 왕진을 청하는 데서 극도에 달하는데 왕진을 청한 것이 결국 할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명이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인지를 알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아름다운 봄날, 깨끗하게 봄옷으로 갈아입고 친구들과 벚꽃 놀이를 나가다가 사망 전보를 받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아이러니로 극적인 효과를 준다. 벚꽃 놀이와 할머니의 죽음이 극적으로 대비되어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이 탁월하게 형상화되었다. ‘조모주 병환 위독’이라는 전보로 시작해 ‘오전 3시 조모주 별세’라는 전보로 끝나는 수미상응의 구성도 탁월하다. 두 전보는 소설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갈래 : 단편 소설, 사실주의 소설
배경
시간적 배경 : 1920년대
공간적 배경 : 어느 시골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주제 : 인간의 허위의식에 대한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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